"그래서?"


월요일 점심시간, 옥상.


평소처럼 친구들과 다같이 모여서 먹는 도중 지난 주에 무엇을 했냐는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고민하다가 지난 주, 둘이서 같이 놀다가 미타케 씨네 집에서 잤다는 이야기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네 사람 다 처음에는 왜 자기는 안불렀냐느니, 연락을 안받더니 둘이서만 놀았구나 하는 식으로 말하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새상 누구보다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심지어는 당사자인 미타케 씨 마저도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표정으로 내 손을 꼭 붙잡은 채 이야기를 듣고있을 정도였다.


"밤새 결국 뭐한거야?"


"오늘 밤은 안재울거라니, 꺄아! 만난지 얼마 안됬는데 두 사람 다 너무 대담해!"


츠구의 귀를 양 손으로 잘 가린 히마리랑 토모찡이 꺄악, 꺄악 거리면서 그런 말을 하는걸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오, 친구들이여. 상상력이 풍부하구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이 생각하는 일은 없었답니다...히죽히죽 웃으면서 그렇데 대답하자 맥빠진 한숨소리가 들려오더니 히마리가 츠구의 귀에서 손을 때었다...


물론 진짜로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곁눈질로 슬쩍 미타케 씨를 쳐다보자 내 시선을 눈치챈듯 그녀가 해맑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를 보니 그저께 밤의 일이 떠올라서 순식간에 뺨이 확 달아올랐다.


미타케 씨는 내 예상대로 아무 의미도 모르고 그 말을 꺼냈다. 그건 맞았다. 틀림없는 사실이였다. 미타케 씨는 그저 순수하게 밤새 놀면서 친목을 다지자는 의미로 오늘 밤은 재우지 않을 것 이라는 말을 꺼냈었다. 실제로도 그냥 밤새 트럼프를 치거나 수다를 떨어나 밴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일상적인 대화만 가득 나누었었다.


문제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미타케 씨의 행동에 있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날 한 시도 쉬게 해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일단 첫째로 거리가 무척 가까웠다. 얼마나 가까웠냐고 한다면 뒤에서 누가 툭 밀치기만 한다면 입술이 닿는 사고가 날 정도로 무진장 가까웠다. 바로 눈 앞에서 그녀의 달콤한 향기가 훅 들어오니 내 뺨도 순식간에 붉어져서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것뿐이면 다행이련만, 미타케 씨는 틈만 나면 내 품 안에 안겨왔다. 바로 코 앞에서 대화를 하다가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조금만 기분이 좋으면 덥석덥석 안겨들고는 내 귓가에 속삭이지를 않나,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지를 않나...심장에 해로운 하루였다. 미타케 씨가 물론 귀여운건 맞고,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도 맞긴 하지만 옥상에서 본 그 날 부터 신경이 쓰이는건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나 신경쓰이는 아이가 그런 스킨십을 하니까 견딜래야 견딜 수 없던 것이다...


"그나저나 로젤리아면 오랜만에 우리 아코도 봤겠네? 어땠어? 즐거워 보였어?"


"아코~?"


뜻밖의 이름에 내가 당황하면서 토모찡이 말한 이름을 되내였다. 아코, 아코...알고있는 이름이긴 했다. 분명 토모찡의 여동생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본 이후로는 제대로 못봐서 얼굴이 가물가물한데에...


결국 떠올리지 못하고 내가 양손을 들어올리자 토모찡이 호탕하게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들어서 갤러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오래 전에 봤으면 기억못하는것도 당연하지! 그렇게 이야기 하며 날 위로해주는것도 잊지 않은 그녀가 사진을 찾았는지 그대로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오오~"


사진 속의 토모찡의 여동생을 보자마자 누군지 단숨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미타케 씨가 자기도 보겠다면서 고개를 숙여서 얼굴을 보더니 아는 사람이라면서 활짝 웃었다. 어째서 눈치채지 못한걸까, 저 웃는 모습이며 살짝 드러난 덧니까지 머리색만 다른걸 빼면 누가봐도 토모찡의 여동생이였는데~


"분명 드럼치는 아이였죠?"


미타케 씨도 기억이 났는지 옆에서 후후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주었는데... 역시나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내 뺨 바로 지근거리에 얼굴을 붙인 미타케 씨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그녀의 예쁜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입술이 뺨에 닿는 사고가 날 법한, 그런 거리였던 것이다. 다만, 본인한테는 자각이 없는지 꺄륵 웃으면서 정말로 우다가와 씨를 닮았다느니, 자매가 있어서 좋겠다느니 천연덕 스럽게 말을 꺼내고 있었다...


평정심,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그럴려면 결국 얼굴을 안보는 것이 제일이였기에 곁눈질로 보는 것 마저 포기하고 마음을 다시 굳게 먹은 내가 휴대폰에 시야를 돌린 그 순간이였다.


"아오바 양?"


계속 이름을 불렀는데 내가 반응이 없으니까 미타케 씨가 조금 답답한듯 내 쪽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부른 것에 반응해서 방금 전 까지의 맹세는 싹다 내다 팔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돌린 그 순간이였다.


입술에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맞닿았다.


그것이 뭔지 이해하기 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라고 해도 일 분도 채 안된 것 같았지만, 여하튼 일 분은 확실하게 걸린 것 같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똑같이 커다랗게 뜬 미타케 씨의 눈동자와 바로 밑, 내 입술만을 반복해가면서 보다가 화들짝 놀란 내가 그대로 거리를 두었다.


입맞춤이였다.


불행한 사고에 가깝기는 했지만 입맞춤이라는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니까아! 내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설마 첫 키스를 이런 식으로, 그것도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아이랑 하게 되다니!


다른 친구들도 예상밖의 상황에 굉장히 놀란 듯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정작 미타케 씨는 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슥 흝더니, 뭔가 아쉽다는 듯 혀를 가볍게 찼다...


그러고보면 내가 아니라 신경써야 할 건 미타케 씨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여고생이지만 그녀는 명문가의 외동딸, 한 마디로 말해서 귀한 몸이였다. 그런 사람인데 소중한 첫키스를 나한테...당장에라도 사과해야 할 것 같아 내가 곧장 그녀를 쳐다보면서 몸을 살짝 숙였다.


"미안 미타케 씨...그 뭐냐..."


"키스 말인가요? 괜찮아요! 전혀 신경쓰지 않아요!"


내 말에 그녀가 활짝 웃으면서 신경쓰지 말라는듯 손을 휘휘 저었다. 말은 저래도 속으로는 신경쓰고 있을것이 틀림없다...아니, 정정. 활짝 웃으면서 입술을 매만지는 저 표정이나 정말로 기뻐하는 듯한 표정을 보면 빈 말은 아닌 듯 했다. 나랑 입을 맞춘게 그렇게 좋았나? 하는 쓸대없는 상상마저 들 정도로 기뻐해줘서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울 지경이였다.


"제대로 못느껴서 조금 아쉬운데 아오바, 한 번 더 하지 않을래요?"


아니면 아예 놀려먹을 작정인걸까,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하는 미타케 씨의 말에 내가 고개를 뱅뱅 저었다. 내 말에 굉장히 아쉬웠던걸까, 평소 그녀답지 않게 내 팔에 달라붙더니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러지 말고오...한 번만 더요..."


그렇게 조르는 그녀의 모습은 반칙에 가까울 정도로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승낙을 해버릴 뻔 해서...


뭐, 평소답다면 평소답고, 평소답지 않다면 평소답지 않은, 그런 평범한 점심시간이였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였다. 이제 슬슬 정리하고 수업을 들으러 내려가자며 다같이 짐을 싸고 정리해서 내려가려는 그 순간에, 계속 조용했던 츠구의 한 마디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응. 역시 그게 좋을 것 같아."


그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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