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가씨를 처음만난 건, 다섯살 즈음의 일이었습니다.


저희 집안, 쿠라타 가문은 대대로 메이드를 배출하는 명가였습니다. 대부호 츠루마키 가부터 시작해서 세계 각지로 파견을 나가는 사람이 있을 만큼, 매년 우수한 메이드를 배출하는 가문이기도 했지요. 저희 어머니나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여서, 어린 시절부터 저는 어머니에게 메이드 교육을 받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교육을 받는 것 과는 정 반대로, 저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낯을 굉장히 가렸으니까, 이런 제가 메이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밖에 없었지요. 아우우...불안감에 매번 몸을 떨면서 고개를 저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쿠라타 가문의 숙명을 어길 수 있는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진지하게 어머니께 말씀드린다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외동딸인 제가 여기서 거부한다면 메이드로 유명한 쿠라타 가문의 명맥이 완전히 끊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또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 않았지요.


그렇게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다섯 살이 되고, 곧장 메이드 복을 입었습니다.


"사실은 조금 더 나이가 차는걸 기다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어머니가 쿡 웃으시면서 제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셨습니다.


"우리 시로 짱이 낯을 좀 가리잖니? 그래서 조금만 더 보려고 했는데, 당주님이 조금 서두르자고 한 모양이야."


지금 제가 가는 곳은 어머니가 일하시는 저택이었습니다. 듣기로는 어머니의 주선 하에, 그 외동딸의 메이드를 한다고 헀지요, 단순히 메이드 일을 하는 것 만으로도 떨리는데, 아직 다섯실이라는 나이에 전속 메이드를요? 놀란 제가 눈을 크게 뜨고 어머니를 쳐다보자 상냥하게 제 이마에 입을 맞춰주신 어머니가 말씀해주셨습니다.


"너와 아가씨랑 동갑이시거든...아가씨한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은 듯 하네."


메이드처럼, 그리고 친구처럼 지내달라는게 어머니의 말씀이셨습니다. 동갑! 그렇게 생각하니 그래도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동갑이면 조금즈음은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요...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어머니의 뒤를 따라서 쫄래쫄래 따라간 제가 어머니의 뒤를 따라 곧장 저택 안에 있는, 아가씨의 방 까지 쫓아갔습니다.


"루이 아가씨, 쿠라타입니다."


"...들어와."


청명하기 그지 없는 어머니의 목소리 너머, 어쩐지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첫대면이구나, 잔뜩 긴장한 제가 옷매무새를 한 번 다듬은 다음 곧장 방 문을 열자마자,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와아..."


버릇없는 행동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방문 너머, 침대에는 마치 인형같은 아이가 앉아있었거든요. 너무나도 예쁜 그 인형같은 모습에 제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어머니가 가볍게 헛기침을 해주셨습니다. 그제서야 간신히 제정신으로 돌아온 제가 양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꾸벅 숙였지요.


"오늘부터 루이 아가씨의 시종을 들게 된 쿠라타 마시로라고 합니댜앗..."


이름은 사전에 어머니에게 들어놨었고, 몇 번이나 연습을 한 것도 있었기에 무사히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만, 잔뜩 긴장한 모양인지 마지막에 혀를 씹고 말았습니다. 실수했다아...당황했지만 그런 제 실수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절 빤히 쳐다보시던 루이 아가씨가 쿡, 하고 웃으셨지요.


"귀여운 아이네, 쿠라타 씨."


그렇게 말씀하신 아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제 쪽으로 다가와서 자그만한 손을 내미셨습니다.


"난 야시오 루이야."


"쿠, 쿠라타 마시로에요 아가씨!"


"방금도 들었어...저기 쿠라타 씨, 초면에 미안하긴 한데, 너만 괜찮다면..."


그렇게 말씀하신 아가씨가 잠시 고민하시더니, 그대로 입을 여시고...


"한 눈에 반했어. 결혼을 전재로-"


*


조심스럽게 눈을 떴습니다.


깜빡 잠이 든 듯 했습니다. 눈을 뜨니 아가씨가 절 껴안으신 채 새근새근 잠들어계시는게 보였지요. 아주 잠깐, 잠들었을 뿐인데 그 짧은 사이에 아가씨와의 첫 만남을 떠올릴 줄이야, 배시시 웃으면서 아가씨의 품 안에 얼굴을 파묻은 제가 뺨을 부비적거렸습니다.


"루이 아가씨..."


어린 시절에 한 눈에 반했다, 고 하신 아가씨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살 아이의 한 순간의 호기심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그냥 해본 말은 더더욱 아니셨지요. 그 말은 절대로 빈 말이 아니었다는 듯 그 날 이후로 꾸준히, 아가씨는 저와 거리를 좁히려고 애를 쓰시고는 하셨답니다.


정작 그걸 거부한건 제 쪽이었습니다, 아가씨와 메이드-신분의 차이가 너무도 나서 쉽사리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만, 그런것에 개의치 않고, 아니, 오히려 제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까지 아가씨는 꾸준히, 꾸준히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시고는 하셨습니다. 그렇게 벌써 십 년 남짓, 그 결과 아가씨가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 즈음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다정한 연인이 되었지요.


지금 생각만 해도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아가씨와 메이드, 보통이라면 사귈 수 없는 두 사람, 그렇지만 아가씨 덕분에 이런 식으로 특별한 관계가 되었지요. 이건 과연 행복한 현실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언젠가는 꺠어나야 할 꿈일까요? 꿈이라면 이대로 깨어나지 말아줬으면,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가씨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친 제가 양 팔을 벌려서 꼬옥 끌어안아주었습니다.


꺠우러 왔다가 붙잡혔습니다만, 아직 학교를 갈 때 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그 때 까지는, 아가씨를 독점할 수 있는 이 시간을 홀로 오롯이 즐길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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